소상공인 김 모 씨는 직원 월급일이 다가올수록 속이 탄다. 정책자금을 신청한 지 벌써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통장엔 여전히 입금이 없다. 경기신용보증재단에서 보증서를 받은 건 2주 전이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인 은행이다. 담당자는 “심사 중이니 순서대로 기다려달라”고만 한다.
정책자금 지원 확인서를 받는 데도 2주 이상이 걸린다. 온라인으로 접수한 뒤 '순차처리'라는 이름 아래 줄을 선다. 신청은 몰리고, 결과는 늦고, 일정은 통보되지 않는다. 이 사이 소상공인은 자금 계획을 세울 수 없다. 급여, 임대료, 납품 등 자금 지출은 정해져 있는데, 대출금은 언제 나올지 오리무중이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담당자에게 도대체 언제 나오는지 물어보는 것도 조심스럽다”고 털어놨다. 이유는 간단하다. 괜히 ‘불편한 민원인’으로 찍히면 심사에 악영향이 있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절차가 투명하지 않고 책임 소재가 분산돼 있는 구조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신청자 몫이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습
더욱 황당한 건 은행의 태도다. 소상공인정책자금 대출은 신용보증기금 또는 지역신용보증재단이 90%를 보증한다. 은행이 감수하는 위험은 10%에 불과하다. 사실상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은행은 ‘자체 심사’를 이유로 대출 실행을 질질 끈다.
이 와중에도 은행은 예대마진 수익은 꼬박꼬박 챙긴다. 공공의 목적을 띤 정책자금을 다루는 입장에서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임에도, 이익은 민간처럼, 책임은 공공에 떠넘기는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은행 측의 전형적인 변명은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년 수조 원대의 순이익을 내는 은행들이 일손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인력이 부족하다면 충원하면 될 일이다. 은행의 ‘느긋함’이 결국 소상공인의 폐업과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은행은 알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은행을 다녀온 며칠 뒤, 어김없이 걸려오는 ‘고객 만족도 조사’ 전화도 소상공인들 사이에선 냉소적인 반응을 낳고 있다. 응대에 문제는 없었냐고 묻지만, 불만을 제기해도 시스템은 변하지 않는다. 고객 중심이 아닌 실적 중심의 형식적인 조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소상공인들이 ‘정책자금은 곧 나온다’는 말만 믿고 버티고 있다. 하지만 '서류상 지원'은 죽은 정책이다. 정책자금은 서류를 넘어서 현장에 제때 도달해야 생명력을 가진다. ‘순서대로’라는 기계적 처리 한 마디에 수백만 자영업자의 삶이 뒤흔들려선 안 된다.
공공재인 정책자금을 느긋하게, 무책임하게 다루는 은행의 태도는 지금도 누군가를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다. 소상공인은 단 하루도 여유가 없다. 은행은 하루라도 긴박함을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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